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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준

임동준 자문과 함께 하는 6차산업 자문단 칼럼

소속 내용이 포함되있는 표
소속 한국식품유통학회, THE BUYER, 한국식품오픈포럼

'코끼리 같은 유통업체', 역으로 활용하려면

작성자
임동준
작성일
2014-10-28
조회수
1047

유통의 속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자 流通의 뜻 그대로 ‘(소비자를 향해) 유연히 흘러가도록 하는’ 속성이다. 모든 유통업체는 이 속성을 갖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의미로 각색하곤 한다. 이를테면, 소비자들에게는 ‘비싸기 그지없는 상품을 최대한 싸게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자들에게는 ‘많이 팔기 위해서는 더 싸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것이 유통의 기법이고 상술의 하나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생산-제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여! 유통업자들에게 노여워하거나 손가락질하지 말자고 일단 권하고 싶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진정한 ‘거상(巨商)’에 대한 그리움이다. 거상은 가치 있는 상품을 구분할 줄 알고,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이동시킬 줄 안다. 비싸야 할 것은 비싸게 구매하고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을 찾아내 더욱 더 비싸게 팔아낸다. 때로는 생산지의 어려움을 살펴 작은 손해를 감수하며 더 나은 상품이 나오도록 유도할 줄도 안다. 아쉽지만, 우리는 그런 거상에 대한 기대를 접어두어야 한다. 기대를 접는 것은 아쉽고 슬프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서로서로 수준에 맞게 응용하고 활용하면 준거상쯤은 만날 수 있고,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생산지가 있었다.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 최대의 유통업체 바이어와 상담을 하게 됐다. 계약이 성사되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텐데, 첫 거래 조건이 너무 야박했다. ‘일단 고객에게 알리기 위한 세일 행사부터 시작하자, 가격은 최대한 낮추고 행사를 위한 인건비는 자체 부담하라…’ 제안 조건을 놓고 점검을 해보니 물건이 다 팔려도 남는 이익이 별반 안 되었다. 유일한 장점이라곤 판매 익월 현금결재 조건이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몇 시간에 걸쳐 회의를 했는데 한결같이 ‘도둑놈들 같으니라구’라고 성토했다. 대표는 밤새 고민한 끝에 계약 체결을 결심했다. 이유는 첫째, 세일행사든 뭐든 일단 상품을 선보이면 재구매가 들어오리라는 확신이었다. 둘째, 가만 생각해보니 인건비는 우리 직원들이 나서면 될 일이었다. 셋째, 그렇게 생각해보니 당연히 지출된 월급으로 유통시장의 원리를 파악하는 교육 효과가 있었다. 넷째, 우리 직원이 직접 팔면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 더 많이 팔고 상품홍보도 성심껏 할 테니 일거양득이었다. 다섯째, 유통업체에서도 우리 회사의 능력을 보고 호감을 가질 것이고 잘만 하면 가격결정권을 우리가 쥘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장점이 계속 등장했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됐다. 한 달이 지난 뒤 유통업체가 놀라워했다. 담당 바이어는 입이 벌어졌고 ‘이쯤해서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들이 납득할 것’이라며 역제안을 해왔다. 판매점포 수는 대폭 늘어났고 소비자 홍보까지 유통업체에서 알아서 해주었다.

 

필자는 우리나라 유통업체들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공룡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거창하고 늑대라 부르기엔 이 눈치 저 눈치 많이도 본다. 코끼리처럼 덩치만 커다란 것이, 자칫 아무데나 발을 디뎌 죽어나가는 미물들도 적잖은 게 사실이다. 이 코끼리들은 오로지 한 가지밖에 모른다.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 고객을 많이 끌어 모아야 한다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팔 줄’은 안다. 게다가 매장도 많이 갖고 있다. 이 코끼리를 나쁘다고 욕하고 비판하는 것은 학자나 정치가들의 몫이다. 산지에서는 활용만 궁리하면 된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앞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상품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있다면, 감동을 일으키는 게 관문이다. 남들과 다른 상품,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감동이야 시간문제다. 접촉하고 도전하면 일어나게 마련이다.

 

6차산업은 융복합을 통한 차별화된 가치가 생명이다. 세상에, 재미가 없는 상품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남들과 비슷한 서비스에 누가 감동하겠는가. 코끼리들도 ‘다름’과 ‘비슷함’은 구분할 줄 안다. 참으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자신감 있게 올라타면 기꺼이 등을 내주는 게 코끼리다. 상인의 속성을 갖고 있는 유통업체에게 어머니 품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욕할 시간에 역으로 활용할 궁리를 하자. 모든 산업의 귀결점은 결국 고객이고 그들은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